일단 워드 프로그램을 실행하고 새 문서를 창에 띄웠다. 하얀 화면을 바라보며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뭘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망설였다. 일단 뭐든 적기 시작했는데, 적응은 생각보다 쉬웠다. 먼저 머리 속 생각을 종이에 손으로 메모했다. 발표 준비 상황에 대한 중간 보고는 말로 대체했다. 쓸 데 없는 수고를 덜자 내용을 충실하게 채우는데 집중하게 됐고 논리는 더욱 견고해졌다. 가장 좋은 점은 시간을 아낄 수 있다는 것이었다. PPT는 많은 경우 이른바 ‘애니메이션 효과’가 중요하게 여겨진다.
보고 내용보다 깔끔하고 세련된 이미지에 과도한 자원을 쏟는 소위 ‘뽀대’에 몰두하는 부작용이 나온다. 이런 것들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들자 여유가 생겼다. “PPT 꾸미기에 공 들이는 시간에 내용에 더 집중을 할 수 있다”는 팀장님의 말씀은 사실이었다. 나는 그 어느 때보다 발표를 제대로 준비할 수가 있었다. 뜻밖의 변화는 현대카드에 이미 찾아와 있었다. 본부별로 한달씩 PPT사용 금지를 시행한 후, 2016년 3월부터는 직원용 PC를 Power point viewer만 가능하도록 바꾸었다. 그 결과 PPT의 35%는 이메일 보고로, 19%는 구두 보고로 대체 됐다. 초기에는 직원들 반발도 있었으나 이제는 형식보다 내용에 집중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작은 보고 습관의 변화가 불러온 놀라운 변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