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ERO PPT

ZERO PPT로 질소 포장을 던져버리다

ZERO PPT로 질소 포장을 던져버리다



 



■ 과자가 아니라 질소를 샀다

포장은 큼직한 데 뜯어보면 과자는 몇 개 들어있지 않은 이른바 ‘과자 과대 포장’사건은, 한 때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다. 학창 시잘 나 또한 속 빈 과자 봉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발표를 돋보이게 만들기 위해 파워포인트(PPT) 발표 자료를 꾸미는 데 갖은 애를 썼다. 인터넷을 뒤져 보기에 그럴 듯한 디자인 템플릿을 돈 내고 내려 받았고, 포토샵을 사용해 수정에 모든 힘을 쏟아 부었다. 번지르르하게 꾸민 PPT를 앞세운 발표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짜임새 있는 내용보다는 ‘예쁜 PPT’를 강조했다. ‘이 정도면 됐다’고 스스로를 추켜 세웠다.


 ZERO PPT를 만나다

'ZERO PPT’는 현대카드의 Simplification 방향성과 함께하는 중요한 정책입니다.”현대카드/커머셜 Summer Internship Orientation 기간 중 기업문화 교육을 받으며 ‘ZERO PPT’정책을 처음 접했다. ZERO PPT’는 불필요한 야근을 만드는 PPT 보고서를 줄이는 캠페인이다. 보고의 형식에 얽매일 필요 없이 내용 전달에 집중하자는 취지다. 과거 현대카드/커머셜은 여느 회사처럼 불필요한 PPT 작업으로 많은 시간과 인력을 소모했고, 보고서 작성에만 1~2일 길게는 3~4일이 걸렸다고 한다.

소문대로 ‘현대카드’ 스러웠다. 그러나 갖은 의심이 꼬리를 물었다. PPT도 없이 과연 보고와 발표가 가능할까. PPT를 못쓰게 하면, 오히려 워드나 엑셀을 PPT처럼 꾸미는 편법이 생기지 않을까. 이미 PPT에 익숙한 직원들은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을 것 같았다. ZERO PPT’는 분명 실패한 정책일 거라 생각하며 하드디스크를 뒤졌다. 그런데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Microsoft Power Point 2010’는 보이지 않았다. 멘탈 붕괴.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할 수 있을까? PPT에 익숙한 나는 도대체 어떤 툴을 이용해 주어진 과제 발표를 준비해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ZERO PPT가 불러온 ‘뜻밖의 변화들’

일단 워드 프로그램을 실행하고 새 문서를 창에 띄웠다. 하얀 화면을 바라보며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뭘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망설였다. 일단 뭐든 적기 시작했는데, 적응은 생각보다 쉬웠다. 먼저 머리 속 생각을 종이에 손으로 메모했다. 발표 준비 상황에 대한 중간 보고는 말로 대체했다. 쓸 데 없는 수고를 덜자 내용을 충실하게 채우는데 집중하게 됐고 논리는 더욱 견고해졌다. 가장 좋은 점은 시간을 아낄 수 있다는 것이었다. PPT는 많은 경우 이른바 ‘애니메이션 효과’가 중요하게 여겨진다. 

보고 내용보다 깔끔하고 세련된 이미지에 과도한 자원을 쏟는 소위 ‘뽀대’에 몰두하는 부작용이 나온다. 이런 것들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들자 여유가 생겼다. “PPT 꾸미기에 공 들이는 시간에 내용에 더 집중을 할 수 있다”는 팀장님의 말씀은 사실이었다. 나는 그 어느 때보다 발표를 제대로 준비할 수가 있었다. 뜻밖의 변화는 현대카드에 이미 찾아와 있었다. 본부별로 한달씩 PPT사용 금지를 시행한 후, 2016년 3월부터는 직원용 PC를 Power point viewer만 가능하도록 바꾸었다. 그 결과 PPT의 35%는 이메일 보고로, 19%는 구두 보고로 대체 됐다. 초기에는 직원들 반발도 있었으나 이제는 형식보다 내용에 집중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작은 보고 습관의 변화가 불러온 놀라운 변화였다.


 단순하게 일하고, 핵심에 집중하다

누구나 일을 잘하고 싶어 한다. 때문에 일의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갖가지 업무 툴(tool)을 사용한다. 하지만 ZERO PPT 정책을 몸소 체험하면서, 오히려 업무 툴이 생산성을 저해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심플리피케이션(Simplification). 단순하게 일하면, 핵심에 집중하고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 현대카드/커머셜에 입사하고 싶은 마음이 더욱 간절해졌다.